「Idea Archive」 2019. 1. 24. 15:32

2019.0001.Archive : 은행파업에 즈음하여

2019.01.08.


은행 파업에 즈음하여..


내가 처음으로 '자의'에 의해서 계좌를 개설하고 지금까지 거래를 이어오고 있는 어느 은행의 파업을 바라보며 ...


친한 벗과 이웃의 아버님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이고,

그들 역시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고, 마지막을 향하고 있거나, 그 다음의 삶을 살아가고 계신다. 또 어쩌면 그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많은 잊혀진 지인들이 더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매일 '미래산업' 어쩌구 하면서 소설을 쓰는 일이 나의 일인지라. 이번 은행 파업의 본질을 살펴보면 과연 은행업에서 그 많은 인원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동안도 조금씩 이행해오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대다수의 창구업무들은 앱과 ATM에서 다 처리가 가능하다. '대면업무' 라고 표현하고 '비대면업무' 라고 표현하는 업무들이 사실은 그다지 구분의 필요가 없어지고 있는 시대로 우리는 점차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신을 위한 심사 역시도 '사람'이 개입하는 것보다 지표상으로 훨씬 공정한 심사가 가능할지도 모르고, Profitability를 측정하는데 있어서 사람의 직관보다 어쩌면 뛰어날지도 모른다.


왜 은행업에서 그렇다면 사람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조금 더 Naive하게 생각해볼 시점이 된 듯하다. 나의 업이 일종의 Consulting에 가까운 업이라고 (도저히 부끄러워서 Research 라고는 못하겠다.) 생각해본다면, 그 역시 왜 굳이 '사람'이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긴 논쟁을 벌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전히 사람의 직관이 쓰여야할 부분, 그 알고리즘화 할 수 없는 직관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결국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 샘이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사람이 갖는 비교우위는 어디에 있으며, 그 어느쪽에도 우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 다음 선택지는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이 우위에선 자리로의 이행이 되지 않는다면 과연 남는 이는 어디서 무얼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다시 돌아와서 다시 파업문제로 되돌아가보자.

그렇다면 "그만한 가치"를 누가 어떻게 창출해내나? 어찌보면 가만히 앉아서 돈버는 것이 은행업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돈 벌기 위해서 발바닥 빠지게 뛰어다니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금융업이 지금 현재에 이르렀겠지. 어떤 관점에서는 전혀 만들어내는 서비스 또는 재화가 없는 산업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겠으나, '금융서비스' 라는 것을 분명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고, 단지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만이 남을 뿐이다.) 사실 은행에 가서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친절하다.' 아니 정확히 만나면 아직 '친절한 분들' 만 만나기 위해서 애를 썼기 때문이다.


친절한 분들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동요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과연 친절한 그 분들이 없고 기계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지는 조금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사실 그 친절함은 '내색하지는 않지만' 불편한 친절함이거든. 인간적으로 그 자리까지 (불편한 친절함을 만나게 되는 자리까지) 가게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지금 제공되고 있는 금융서비스' 뿐일까?


냉랭한 아침에 커피한잔 마시며, 잡글 배설